“호텔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설렘이 좋아요.” 스위트룸 소파에 느긋하게 기대앉은 이현이가 말했다.
얼마 전 아이들과 호캉스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더라고요. 여행 자주 가세요?
자주는 못 가요. 코로나19 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요즘은 진짜 바쁘거든요. 그날은 연말이라 집에만 있기 아쉬워서 가까운 곳으로 하루 다녀온 거예요. 짧은 일정 안에서 기분 전환하기에는 호텔만 한 곳이 없는 것 같아요.
호텔의 어떤 면들이 좋나요?
호텔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서비스들이 규격화돼 있어서 어딜 가든 일정 수준 이상의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아요. 특히 저처럼 아이와 함께 다니는 경우에는 호텔의 정돈된 매뉴얼이 도움 될 때가 있거든요. 수영장이나 라운지처럼 공간 안에 즐길 수 있는 시설이 많은 점도 마음에 들고요.
만약 오늘처럼 혼자 호텔에서 시간을 보낸다면요?
그럼 룸 밖으로 한 걸음도 안 나가겠죠.(웃음) 느긋하게 인룸 다이닝 시켜놓고 하루 종일 TV만 볼 거예요. 심각한 드라마나 영화 말고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 같은 걸 틀어놓고요. 종일 뒹굴뒹굴 그렇게 보낼 거예요. 아무 목적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본 지 오래됐거든요.
그런 시간이 요즘 절실하다고 느끼나요?
휴식이 정말 필요하긴 해요. 하지만 일이 바쁜 만큼 아이들, 남편과 보내는 시간도 소중하죠. 그리고 아마 저보다는 남편이 더 휴식이 필요할 거예요. 주중에는 회사에 출근하니까 주말에라도 좀 쉬어야 하는데, 제가 주말 스케줄이 잡히면 꼼짝없이 독박 육아를 해야 하니까요. 보통 주말에 집에서 <동상이몽 2-너는 내운명>(이하 ‘동상이몽’)을 촬영하다 보니 더더욱 쉴 틈이 줄었어요. 바쁜 게 좋으면서도 이런 면은 좀 아쉬워요.
방송 보고 좀 놀랐어요. 저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나 싶어서요.
이왕 시작한 거, 우리 스타일대로 재미있게 해보자고 서로 얘기했어요. 남편은 확실히 방송 쪽으로 끼가 있어요. ‘내가 아니라 이 사람이 방송을 했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한 적도 있을 정도로요.(웃음) 원래 성격이 솔직하고 웬만해서는 크게 긴장을 안 하는 데다 방송 자체에 어색함이 없는 사람이라 관찰 예능이라는 콘셉트와 특히 더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남편의 반응도 궁금한데요?
주말마다 촬영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텐데 아직까지는 즐겁게 하고 있어요.(웃음) 오히려 ‘동상이몽’이 저희 부부한테는 좋은 기폭제가 된 것 같아요. 평소에는 서로 바빠서 제대로 마주 앉아 대화할 시간조차 없는데, 방송 덕분에 그간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나누기도 하고, 같이 뭔가를 하면서 연애할 때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골 때리는 그녀들>로 연말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신인상도 수상하셨죠?
울컥해서 수상 소감을 말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평생 한 번만 받을 수 있다는 신인상을 받을 줄이야!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웠죠. 방송을 시작한 지 10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지난해는 저한테 유독 특별했어요. 일이 계속 잡혀서 바쁘기도 했고, 하는 프로그램마다 좋은 반응을 얻었거든요. 특히 <골 때리는 그녀들>은 출연자 누구도 방송이라고 생각지 않고 정말 진심을 다해서 뛰어요. 출연자 전부 사비와 개인 시간을 들여서 훈련도 정말 열심히 해요. 다들 스케줄이 바쁘다 보니 주말에 팀 훈련이 잡히기도 하는데, 남편이 훈련이며 스케줄이며 적극 지지해줬죠. 그런 남편이 앞에서 박수를 쳐주니까 더 울컥했던 것 같아요.
그 누구의 축하보다 기쁘고 감격스러웠을 것 같아요.
그럼요! 회사 다니면서 육아까지 병행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늘 “이왕 하는 거 잘해야지. 가서 열심히 훈련하고 경기에서 이겨!” 하고 응원해줬거든요.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상이라도 타야지” 라며 은근히 상을 바라기도 했죠.(웃음) 남편의 기대에 부응한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하하.
축구, 뭐가 그리 좋던가요?
저도 그게 신기해요. 내가 살면서 이렇게까지 승부욕을 불태운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없거든요. 공부, 모델, 방송, 사업까지 처음부터 목표를 세우고 ‘반드시 이루겠다’고 집요하게 달려든 건 아니었어요. 상황에 던져지면 최선을 다하긴 하지만 성격상 해도 안 될 것 같으면 아예 시도도 안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축구는 너무너무 잘하고 싶고, 간절히 이기고 싶어요. 스스로도 놀랄 만큼요.
그렇게 뭔가에 몰두하고 난 뒤 달라진 게 있나요?
모델은 ‘아름다움이란 이런 모습이야’ 하고 보여주는 일을 하잖아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의된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습관이 있었어요. 모델로서 좀 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요. 그런데 <골 때리는 그녀들>을 촬영하면서는 그런 모습에 전혀 연연하지 않게 됐어요. 내가 화면에 어떻게 나오는지 전혀 신경이 안 쓰여요. 그게 묘한 해방감을 주더라고요.
작은 인식의 변화가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곤 하죠.
축구를 하고 나서 내가 이 악물고 노력하면 뭔가를 이룰 수 있구나, 나도 할 수 있구나를 깨달았어요. 이런 경험을 좀 더 어린 나이에 했더라면 더 많은 것에 도전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너무 과도한 의미 부여인지는 몰라도 작년 한 해는 저한테 ‘껍질을 깨고 나온 듯한’ 시기였던 것 같아요.
축구 얘기를 할 때는 정말 눈빛이 반짝반짝하네요. 오늘처럼 일이 늦게 끝나는 날엔 집에 가자마자 푹 쉬는 편인가요?
밀린 집안일이 없고 아이들도 자고 있으면 혼자 늘어져서 TV 보는 게 저의 휴식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TV를 보면서도 숙제를 미룬 학생처럼 ‘아, 축구 영상 봐야 하는데…’ 하면서 괜히 마음이 무거워요.(웃음) 그런데 오늘은 못 쉴 것 같아요. 이따 밤에 축구 개인 훈련이 잡혀 있거든요. 집에 가서 아이들 자는 거 잠깐 보고 다시 나가야 해요.
축구에 진심이시군요?
네! 다음 경기에서 꼭, 무조건 이기고 싶거든요!
Editor KIM EUNHYANG
Photographer SONG SIYOUNG
Styling 윤은영
Hair 최고
Make-up 노한결
Location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호텔 & 서비스드 레지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