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예술 사이의 어디쯤

by Styler USA

식물과 촉감의 경계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밍예스 프로젝트의 유민예는 생기 없는 회색 콘크리트 공간을 초록 기운 가득한 정원으로 탈바꿈시킨다.

 

밍예스는 무슨 뜻이에요?
밍예스는 친구들이 즐겨 부르던 ‘밍예’라는 애칭에 기분 좋은 단어 ‘Yes!’를 덧붙여 만든 이름이에요. 밍예스의 모든 프로젝트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죠.

식물과 자연을 작업의 소재로 삼은 이유가 있나요?
식물이 뿜어내는 에너지와 긍정적인 힘을 사랑하지만 식물을 키우는 재능은 없었어요. 이 아쉬움을 시작으로 늘 푸르른 무언가가 공간에 있었으면 했죠. 지속가능도 하지만 촉감적 재미도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용감도 적당히 묻어나는 오브제가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식물이 주는 생물학적 장점은 없지만 다양한 촉감의 시각적 ‘팅글’이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 또는 식물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운 상업 공간, VMD, 브랜드 팝업 등에 초록 에너지를 채웠으면 해요.

회색 도시에 작은 정원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로 위빙을 택했어요.
영국 교환학생 시절에 코펜하겐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어요. 일주일이 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수많은 오브제 중 텍스타일의 위트 있고 발랄한 매력에 빠졌고, 국내에도 색다른 시각의 섬유 오브제를 제안하고 싶었죠. 그중 다양한 종류의 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위빙에 매료됐어요. 처음부터 식물 작업을 해야겠다 마음먹은 건 아니고 위빙 기술에 빠지게 된 후 텍스타일의 다양한 촉감과 질감을 살릴 수 있는 주제를 찾게 됐어요. 단순하지만 무한히 증식할 수 있고 기분 좋은 촉감을 지닌 선태식물과 교집합을 발견한 이후 지금까지 식물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터프팅 작업이라 착각하기도 하지만 핸드크래프트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위빙의 특징은 굵기가 많이 다른 실도 함께 사용하고 원하는 길이로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실뿐 아니라 경사에 걸 수 있는 모든 소재로 무궁무진한 연출이 가능해요.

언뜻 진짜 이끼와 잔디처럼 보여요. 집 안의 바닥, 벽, 소파 등 어디든 자유롭게 놓아 초록 기운을 더하는 러그형 오브제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렸나요?
누구나 자연을 가까이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어요. 별다른 관리 없이도 기분 좋은 무한 에너지를 전해주는 오브제를 공간 한편에 두면 좋을 것 같았죠. 사실 이끼 오브제에 용도를 명시하지 않아 조금 걱정도 했어요. 작업을 시작할 땐 개인 구매자보다 상업 공간에서의 이용을 염두에 두었죠. 그런데 상업 공간이 아닌 개인 공간에서 상상하지 못할 만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해주셔서 재미있어요. 오브제의 촉감이 기분을 좋게 해준다며 침대에서 애착 인형처럼 사용하는 분도 있고 강아지 노즈워크 놀이 겸 방석으로, 플러그를 가리는 용도로 활용하기도 하더라고요. 용도를 명시하지 않은 것이 더 재미있는 사용을 유도한 듯해 기분이 좋아요. 협업 공간에서도 이끼 오브제를 활용하는 방식이 다양해요. 빛이나 통풍 문제로 식물을 키우기 어려운 실내에서 실제 조경처럼 활용하기도 하고요.

이끼 오브제 하나를 탄생시키려면 한땀 한땀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요?
이끼가 증식하듯 조각들을 엮어 만들어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어느 공간이든 알맞은 스케일과 형태로 녹아들 수 있어요. 기존 이끼 오브제를 쪼개어 다른 방식으로 이어 붙이면 다시 색다른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작업 방식입니다. 작업 스케일도 이끼가 군락을 이루듯 무한히 확장할 수 있고요.

늘 초록을 가까이하는 삶은 어떤가요?
초록색은 어느 공간이든 편안하고 머무르고 싶게 만드는 것 같아요. 작업실에 초록 더미들이 잔뜩 쌓여가는데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해지죠.

영감을 준 식물, 정원, 식물원, 숲이 있나요?
단순하지만 다양한 촉감의 선태식물이나 땅바닥에서 자라나는 풀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제주도 곶자왈 생태숲은 습하고 음지가 많아 다채로운 종류와 형태의 선태식물이 분포해 있는 동화 같은 장소죠. 땅바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리고 싱그러운 수많은 풀이 자리를 잡고 있어요.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데요. 스페인 메노르카섬에 갔을 때 떠오른 영감으로 작업한 작품이 ‘스패니시 모스(Spanish Moss)’예요. 태양빛이 끊임없이 내리쬐는 현무암 지대 위, 바짝 마른 건초와 풀들의 색감과 형태는 너무 아름다웠죠. 나라마다 지형마다 기후마다 다르게 피어나는 풀들은 늘 새로워요.

오래전부터 많은 예술가들이 정원가이기도 했고, 또 수많은 작품에서 식물과 정원에서의 생활을 예찬해왔어요. 식물, 정원에 관한 문장 중 좋아하는 것이 있나요?
“모든 아름다움을 다르게 정의할 수는 있지만 아름다운 것에 둘러싸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정원은 개인의 미적 감각을 발견하고 표현할 수 있는 놀라운 장소다.”

굉장히 신기한 프로젝트도 많이 선보이고 있어요. 최근 ‘원형들’에서 진행한 팝업 전시나 콜라보 케이크도 그렇고요.
예술적 범주에서도 작업을 하지만, 경계를 허물어 상업 공간에서 팝업 형식의
전시를 하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러던 중 실험적 비주얼의 디저트를 만드는 ‘원형들’과 함께 작업하면 시너지가 일어날 것 같아 먼저 연락을 했습니다. 원형들 대표님이 흔쾌히 수락해주셨고요. 팝업 전시의 대주제 ‘씨앗공’ 아이디어를 떠올리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원형들의 디저트와 밍예스 프로젝트의 러그 오브제를 어떻게 한 주제 안에 어우러지게 할지 고민을 했어요. 평소 식물, 정원, 조경에 관한 책을 자주 읽는 편인데, 땅을 경작하는 방식 중 하나인 무작위로 씨앗을 뭉쳐놓은 씨앗공을 바닥에 던져 자연스럽게 땅에 뿌리 내리게 하고 이 땅을 다시 뒤집어 지반을 재정비하는 방법이 떠올랐어요. 어떤 씨앗이 들어 있는지 모르는 밍예스 씨앗공이 원형들에 착륙해 자란다는 콘셉트 아래 미지의 땅에서 자라난 ‘스프링 모스(Spring Moss)’와 채소, 씨앗공 케이크로 스토리텔링을 했어요. 비정형적 방식으로 생겨난 숲 정원에서 다양한 상상을 하며 즐기길 바랐습니다.

북서울미술관의 유휴 공간을 살리는 ‘라운지 프로젝트’에서는 작품 ‘군락’을 선보였어요. 관람객들이 ‘군락’을 어떻게 감상하길 바라나요?
관객들과의 상호작용에 중점을 둬 실제 감촉을 친밀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어요. 신발을 벗고 작품 위를 걷고 앉고 누워봤으면 해요. 관객과의 상호작용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은 촉감이라고 생각해요. 라운지에 피어난 거대 군락 속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다양한 군락의 촉감이 제각각 미세하게 다르거든요.

어떤 마음으로 식물을 대해야 할까요?
면밀히 관찰하는 마음이 중요해요. 식물은 직접 말하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수많은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거든요. 이를 캐치하고 소통하고 교감하려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선보이고 싶나요?
저의 미감을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공간에 녹이는 것이 늘 꿈이었어요. 제 작업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고 이 모든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표현하고 제안하며 긍정적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작업들을 이어나가고 싶어요.

Contributing Editor 유승현, 김희성, 오한별
Photographer 송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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