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1년차 부부의 이주 생존기

by Styler USA

결혼은 둘만의 문화, 언어를 구축하는 일이다. 윤시후, 우태인은 제주에서 두 사람만의 세계를 쌓고 있다.

서울 해방촌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윤시후와 플로리스트로 일한 우태인은 1년 전 서귀포로 내려왔다. 오래된 집을 고쳐 카페 올드패션을 열고 그 옆으로 사진 작업실을 두어 매일을 따로 또 같이 보낸다.

제주 참 덥죠? 제주에서 두 번의 여름을 보냈다고요.
우태인(이하 우) 이제 1년이 조금 넘었어요. 시후,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지난해 7월 30일에 제주로 왔어요.
윤시후(이하 윤) 코로나19가 심해졌을 때 내려왔어요. 사진관과 집 재계약이 맞물려서 정리하고 제주로 이사했죠.

제주를 선택한 이유는요?
 5년 전에 제주에서 1년간 살다가 1년 반 정도 세계여행을 했어요. 제주는 제게 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었어요. 3년간 태인이를 졸라서 내려왔죠.
서울에서는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오래된 공간, 물건이 주는 안정감을 좋아하는데, 그럼에도 제주로 이주하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부모님, 친구들이 걱정도 많이 했고요. 하지만 제가 행복하면 그 에너지나 영향이 주위 사람에게도 끼칠 거라 생각했어요. 제 행복과 미래를 믿었죠.

서귀포는 이주민이 많지 않은 지역이에요. 굳이 작은 시골 마을 위미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어요.

 1년살이를 했던 월정, 행원리 쪽을 알아보려고 했어요. 지인들도 근방에 사니까요. 하지만 이전과 달리 짝꿍이랑 내려왔으니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좁은 마을에 지인들과 모여 살면 술자리도 잦고 너무 많은 걸 공유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범위를 넓혔죠. 한 달 넘게 매주 살 집을 보러 내려왔어요. 그런데 마땅한 집이 없더라고요. 올드패션은 체념한 상태로 마지막에 본 공간이에요. 아침 7시에 조천에 위미리까지 달려와서 매물을 보았죠. 9시 출발 비행기를 예약해둔 상태였거든요.

 당시에 저는 고양이들을 돌봐야 하는 데다가 일 때문에 같이 이동할 수가 없었어요. 인터넷으로 괜찮은 매물을 찾으면 링크를 공유하고 시후가 보고 오는 식이었죠. 이곳은 사진을 보자마자 운명처럼 느껴졌어요. 마당에서 자라는 하귤나무 두 그루가 대로를 가려 정원이 아늑한 숲처럼 보였거든요.

지난 1년간 이곳에서 태인 씨가 말했던 행복을 찾았나요?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가게를 운영하니 규칙적인 삶을 산다는 게 큰 변화예요. 저희는 서울에서도 스쿠터, 올드 카를 타고 다녔거든요. 남들보다 자유롭게 살았어요. 대신 삶의 범위가 커졌죠. 또 하나 달라진 점은, 서귀포는 문화시설이 정말 없어서 집에서 자주 영화를 본다는 거예요. 영화관에는 1년에 두 번 갔나 봐요. 대신 또 둘 다 술을 좋아해서 매일같이 한잔씩 마시죠.
 이곳에서도 똑같이 사진 작업을 해요. 인테리어 소품도 조금 팔고요. 사실 지난 1년 내내 직접 카페와 집 공사를 했어요. 이제서야 일상을 일구는 중이죠.

가구나 건축재 종류가 많지 않은 제주에서 직접 공사를 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떤 일이든 우리 손을 거쳐야 마무리가 된다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일은 직접하고 어려운 건 디자인을 잡아 시공을 의뢰했어요. 예를 들면 벽을 뚫을 수는 없으니까 아치 형태로 디자인을 잡아 부탁드렸죠. 이후에 벽을 칠하거나 메꾸는 건 저희 몫이었고요. 제재소에서 나무를 사와 바닥을 깔면 태인이가 칠하는 방식이었어요. 마당 잔디도 둘이 다 깔았어요.

 제주는 배송이 안 되는 물건이 많아요. 가구는 당근마켓에서 구하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주워 왔어요. 빈티지풍의 인테리어, 물건을 좋아해 서울에서 끌어안고 내려온 것도 많죠.
1년 사이 제법 매무새가 갖춰졌어요.

이사도 쉽지는 않았겠죠?
 5월 말에 계약해서 두 달 만에 이사했어요. 택배 상자 30개, 차 두 대와 함께 내려왔는데, 이렇게 이사를 할 수도 있구나 배웠죠. 저희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택배 박스도 왔더라고요.
쉬긴 글렀구나 생각했죠. 하하.
 지금 집은 제주에서 두 번째 집이에요. 이전 집은 구옥인데도 깔끔했어요. 거의 고치지 않고 가구만 구해서 살았죠. 저희는 벽에 못을 박는 일조차 버거우니까 차라리 허름한 집을 찾자 싶었어요. 집 앞에 붙은 ‘방 놓습니다’라는 벽보를 보고 지금 집을 구했어요.
 이번 집은 정말 많이 손봤어요. 오랫동안 비었던 집이라 벽지는 곰팡이가 슬었고 장판은 습기로 가득했죠. 벽지, 장판, 조명까지 직접 새로 고쳤어요.

마을 어른들도 두 사람의 그런 모습을 신기하게 보셨겠어요.
 시후가 마을 할머니들의 예쁨을 많이 받아요.
 먼저 가서 인사하고 시간 날 때마다 말동무를 해드려요. 한 번씩 집에 오라고 하셔서 직접 기른 과일이나 채소를 챙겨주십니다. 감사하죠.
 저도 시후를 본받아서 같이 인사드려요. 종종 “색시, 애기 안 낳냐?”고 물어보시면 “낳으면 키워 주실 거죠?”라며 너스레 떨어요.

끼니는 주로 어떻게 해결하나요?
 카페에 필요한 재료를 사기 위해 규칙적으로 장을 보긴 해요. 하지만 대부분 있는 것 안에서 먹어요. 거나한 상을 차리는 게 아니니까. 고기를 주로 삶아 먹어요. 삶는 동안 씻고 나오죠. 간소하지만 건강한 삶.
 서울에서는 함께 살아도 밥을 같이 먹을 시간이 없었어요. 저는 아침 11시부터 밤 9시까지 촬영을 했어요. 중간에 밥 먹을 겨를도 없어서 커피나 빵으로 때웠고요. 태인이는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했기 때문에, 가끔 짬을 내 낮에 함께 커피 한잔 마시는 게 전부였어요. 보통 외식을 했고 주로 야식을 같이 먹었어요. 이전에 비하면 둘 다 엄청 건강한 삶이죠.

혼자도 셋, 넷도 아닌 둘이 함께해서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희는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취미도 달라요. 얼마 전에 시후가 ‘우리 둘을 한 사람으로 표현하면 제가 머리고 자기가 몸’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느 일에 어떤 사람이 더 적합한지 정확하게 알아요. 저희는 혼자일 때보다 또 어느 누구와 있는 것보다 둘이 있는 시간이 가장 즐거워요.
 제주에 와서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됐어요. 이전엔 태인이가 무언가를 선택하는 데에 스트레스 받는지 몰랐고, 태인이 역시 제가 매일 고생하는지 몰랐죠. 서로를 바라봐야 아는 것들이니까.

 스트레스를 덜 받고 사는 법을 터득하는 중이에요. 이 친구가 생각하는 대로 하면 지름길로 가는구나, 고민하는 대신 행동이 빠르고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구나 같은 거죠. 이제 손발이 맞기 시작했어요. 뻔한 길을 가거나 돌아서 가더라도 둘이 하면 재밌잖아요. 지금 저희는 사실혼 상태예요. 결혼식을 따로 하지 않았죠. 저희 또래 친구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결혼이나 육아잖아요. 저희도 많이 보고 듣는데, 우리에게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에 대한 확신이 있거든요.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서 싸울 여지를 만들고 싶지 않아요. 언젠가 마음이 변해서 결혼식을 올릴지는 모르겠지만 식장에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감사하게도 양가 부모님도 동의해주셨어요. 훗날 결혼식은 부모님과 간단히 식사하는 정도로 끝날 수도 있겠죠.

두 사람이 지난 1년간 손수 꾸민 카페 올드 패션. 당근마켓과 버려진 가구를 이용해 1970년대 미국 시골집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빈티지한 무드를 좋아하는 부부의 감성이 한껏 담겨 더욱 소중한 공간이다.

제주에서 두 사람의 낭만과 현실을 꼽자면요.
 저희는 제주가 최종 정착지라 생각하지 않아요. 계속 여행 중이죠. 여행에는 낭만과 현실이 공존하잖아요.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로맨틱한 필터가 씌워지는 것 같아요. 현실이요? 서귀포는 배달이 쉽지 않다는 것? 먹고 사는 것? 생계를 생각하지 않고 내려오면 빠르게 육지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저는 일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카페 정원을 가꾸는 것도 일이라고 생각할 때와 취미라고 생각할 때가 다른 것 같아요. 일이라고 생각하면 힘들고 낭만이라면 기쁘겠죠.
 평상시 즐겁게 사는 것 자체가 낭만이에요. 가끔 친구들이 제주에 놀러 오면 현실을 실감해요. 친구들은 여행을 왔으니까 우리와 놀고 싶겠지만, 저희는 일을 해야 하니까요. 그때 낭만과 현실이 두드러지게 대비되죠. 친구들이 없을 땐 퇴근 후 노을을 보는 게 낭만적 일상인데, 그 친구들이 오면 현실이 되어요. 멋진 노을을 보여줘야만 할 것 같고 맛집, 해녀 식당에 데려가야만 할 것 같으니까요.

앞으로의 제주 생활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요?
 무언가 큰 꿈을 꾸지는 않아요. 그저 천천히 손때 묻혀가면서 재밌는 일에 도전하고 싶어요.
 작년에는 바다 수영을 한두 번밖에 못 했어요. 제주를 많이 못 즐겼죠. 올해 너무 즐겁더라고요. 일보다 제주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누리고 싶어요. 퇴근하고 밤바다에서 수영할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겠어요.
 서울에서는 퇴근길 버스에 올라야 할 시간에 수영복 챙겨서 바다에 들어가는 게 너무 좋아요. 지금 인터뷰 끝내고 나서도 수영하러 가려고. 하하.

In the Market Bag
“블루베리는 집주인 할아버지가 재배한 것을 따 주셨고 마늘은 옆집 할머니가 주셨어요. 가지와 고추는 집주인 할아버지가 모종을 사다가 마당에 심어주신 걸 수확했죠. 부추는 카페 뒷마당에서 자라고 있었어요. 제주는 봄에 쑥, 고사리가 엄청 많이 나요. 쑥, 뽕잎 같은 것도 열심히 따다 먹었어요. 식물이나 식재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이걸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재미난 취미예요.”

 

Contributing Editor 유승현
Photographer 박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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