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약방 뿌리의 윤영화는 자연에서 필요한 것을 채취하고 스스로 가다듬어 생활한다. 아로마테라피스트로 활동하는 그에게 단출한 삶은 향으로의 몰입을 가르친다.
좋은 냄새로 채워진 일상은 보다 진취적이고 생동감 있게 꾸려진다. 오감 중 후각은 신경계와 밀접한 데다 기억, 감정, 의욕을 담당하는 뇌의 같은 부위에서 처리된다. 어떤 냄새를 맡았을 때 첫사랑의 얼굴이나 어릴 적 기억이 단상처럼 떠오르는 건 이 때문이다. 제주에서도 인적이 드문 한적한 시골에 작은 작업실을 열고 활동 중인 시골약방 뿌리의 윤영화. 그는 냄새의 힘을 알기에 이 공간 안에서 오롯이 좋은 향만 연구한다. 천연 향을 치료 목적으로 다루는 그는 식물(허브)에서 추출한 아로마 오일을 배합해 향을 만들고 비누나 밤처럼 좀 더 사용하기 편리한 형태로 제작하는 일을 한다. “아로마 오일은 식물의 골수와도 같아요. 대단한 약용 효능과 에너지를 지녔거든요. 향을 맡는 순간 호흡기를 통해 뇌신경에 전달된 화학적인 요소들이 몸과 마음에 영향을 줘요. 또 아로마 오일을 피부에 바른 뒤 혈액을 채취하면 오일의 결정이 발견되는데, 관절염과 비염 등 염증 치료나 독소를 배출하는 역할을 해요. 아로마 오일이 강한 에너지를 지닌 만큼 늘 좋은 기운으로 블렌딩 작업에 임하고 그 에너지가 오일에 더해지길 바라죠.” 후각은 미각처럼 컨디션이나 화학물질 노출 정도 등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또 날씨, 습도, 기분에 따라 같은 향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용자만큼이나 조향사의 컨디션이나 라이프스타일은 꽤 중요한 요소다. 영국에서 대체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서울에서 자연요법에 기초를 둔 아로마 제품을 10년간 만들었던 그는 3년 전 제주로 이주했다. 인적이 드문 시골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삶을 모색한 것.
“대체의학 병동을 운영하고 허벌리스트, 아로마테라피스트가 클리닉을 열 수 있는 독일, 영국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법적 규제가 많아 활동 영역이 좁을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국내에서 ‘아로마’의 개념이 세탁세제나 방향제 등의 제품을 통해 전파되면서 아로마 오일이 지닌 가치나 의학적 측면은 간과되는 게 아쉬웠죠.” 의학적인 활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로마 제품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고 철저히 사용자 중심의 제품을 만들다 보니 샴푸나 아이 크림 등 제품의 가짓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자연 물질을 사용하지만 작업은 자연의 순리에 반하는 것만 같아 제주에 내려온 뒤 그는 결단을 내렸다. 소비보다 자급자족하는 삶을 추구했다. 작업실 역시 바다나 숲으로 우드 헌팅을 다니며 완성했다. 자연의 물질만 사용하는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다른 차원의 시간이 흐르는 것만 같은 분위기에 압도된다. “제주에 이주한 뒤 자급자족을 지향하게 되었어요. 허브나 채소를 재배해 차를 끓여 마시거나 요리를 하죠. 천에 감물을 들이고 손바느질로 옷을 만들어요. 또 지인들과 물물교환을 하기도 해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삶은 제 조향 작업에도 큰 영향을 줘요. 소비가 전부였던 생활을 끊어내니 물질에 목맬 필요가 없어요. 경제활동에 쓰던 시간, 에너지를 전적으로 작업에 쏟아요. 또 소비자에게 서비스하기보다는 신념을 지키게 해줘요. 저 자신이 충만히 사는 기쁨을 누릴수록 좋은 향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는 제주에 머물며 단순한 삶, 소비보다 실천이 자연스러운 생활을 구축했다. 경제활동 대신 자연이 지닌 향이나 안식에 집중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숲과 바다로 향했다. 계절의 모습, 에너지를 오감으로 경험하며 자연의 향을 늘 가까이한다.
“제가 다루는 향이 모두 자연 속에 존재하죠. 아로마 오일은 풀, 꽃, 나무에서 추출한 것들이니까요. 아토피에 맞는 오일처럼 치료가 필요하거나 체질적인 질환을 예방해야 하는 사람에게 약초를 처방하듯 도움을 주는 제품을 만들어요. 몸이 필요로 하는 향을 조향하죠.” 평소엔 작업실이지만 간헐적으로 약방으로 문을 연다. 약방에 찾아오는 손님들과 1시간 가량의 대화를 나눈 뒤 불면증, 아토피, 비염처럼 몸에서 불편한 곳, 생활 습관, 즐겨 먹는 음식 등을 파악해 섬세하게 오일을 만든다. 서울에서부터 뿌리를 찾아주는 손님들을 위해 오일, 비누를 만드는 일은 여전하지만 제주에 와서 작업 범위가 조금 더 깊고 넓어졌다. 제주 스테이 공간을 위해 향을 조향하거나 브랜드에 걸맞은 향을 만드는 일을 의뢰받기도 한다. 뿌리의 제품이 놓인 공간에서 숙박한 손님이 그 향과 기분을 잊지 못해 직접 연락해온 일도 있다. “좋은 오일을 찾는 게 제 일이에요.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엔 1년에 한 번씩 영국, 독일, 프랑스 등으로 최고의 아로마 오일을 찾아 떠났어요. 아로마 오일은 와인과 비슷해요. 같은 들판에서 재배한 허브도 생산 연도, 환경에 따라 향이 다르죠. 또 같은 사람이 동일한 향을 조향해도 100% 같을 수는 없어요. 매 순간 달라지는 공기, 바람, 풀과 같은 자연 물질이니까요. 인공적인 향수에 익숙한 사람에겐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죠. 그럼에도 몸은 참 영악해서 천연 향에 입문하면 인공 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들 해요. 몸은 좋은 향을 필요로 하죠. 다양한 제품을 만들기보다는 천연 향의 이로움을 알리고 싶은 제 마음도 그렇고요.“
시골약방 뿌리는 주말마다 간헐적으로 문을 연다. 인스타그램(@ppuri_aromalab)에서 오픈 공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DM으로 방문 예약도 가능하다.
Contributing Editor 유승현
Photographer 박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