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시장에서 컬렉터는 작가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열렬한 지지자며 때론 한 장르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멀게만 느껴지던 예술을 일상 가까이로 가져오며 더욱 확장시키고 있는 아트 컬렉터를 만났다.
미국 뉴욕과 서울 이태원에 자리한 갤러리 ‘토마스 파크’의 박상미 대표는 번역가이자 작가, 갤러리스트이자 컬렉터다. 이 모든 호칭은 예술이라는 큰 맥락을 관통한다.
단도직입적으로, 언제 작품을 사나요?
일단 저는 모으는 작품과 사는 작품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정한 컬렉터란 자신만의 작품 구입 원칙이 있고, 미술품을 관리하고 수정할 수 있는 창고가 있고, 자신의 컬렉션을 어떻게 보여줄지 계획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월급을 받으면 바로 미술품을 샀어요. 저에게 작품은 옷과 구두 같은 필수품일 뿐이에요. 마치 생필품을 사듯 작품을 구입하는 거죠. 자동차나 값비싼 귀고리는 없어요.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없으니 더 갖고 싶은 것을 사야죠.
어떤 환경에서 컬렉터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요.
오랫동안 문학작품을 번역하고 예술·문화를 주제로 글을 쓰면서 늘 예술을 접해왔어요. 또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미술과 미술사를 공부하고 ‘토마스 파크 뉴욕’을 오픈하며 예술계에 깊이 몸을 담그고 있었어요. 사실 제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글과 그림은 모두 예술을 관통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해하는 예술이 눈앞에 있고 소장할 수 있는데 어떻게 구입을 망설일 수가 있겠어요.
뉴욕은 굉장히 오랫동안 예술이 성행한 만큼 컬렉션 문화가 잘 자리 잡았죠. 가장 놀란 부분은 컬렉터가 후원자의 개념으로 갤러리와 아티스트를 지지한다는 거예요. 갤러리나 작가가 전시를 열 때마다 작품을 서너 점씩 사죠. 예술적 지원을 주고받은 이들이 끈끈한 관계를 맺으면, 비로소 그 컬렉터만의 컬렉션이 완성돼요. 그런 문화를 너무나 당연하게 형성하고 있어요.
미술 시장에서 컬렉터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작품을 사는 건 작가와 갤러리스트를 도와주는 일이예요.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컬렉팅을 하느냐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질 것 같아요. 정말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조언을 받아 구매한 작품으로 하나의 컬렉션을 만드는 건 엄청난 사회 공헌이라고 생각해요. 되팔기 위한 작품을 사는 것은 개인의 재테크죠. 다만 제가 배우고 향유해온 예술은 늘 돈과는 대척점에 있었어요. 뉴욕에서 갤러리를 운영한다는 건 아트라는 금융 상품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일이거든요. 저는 인문학적으로 예술에 다가가는 사람이에요. 소장품이 큰돈이 된다면 되팔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 시작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명하지 않은 작가를 알아가는 경로는 무엇인가요?
최근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 크리스티나 트나글리아(Christina Tenaglia)의 전시를 토마스 파크 뉴욕에서 진행했어요. 예술 분야에 있다 보면 마음에 드는 작가를 알음알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죠. 크리스티나는 뉴욕에서 전시를 연 경험이 없는 작가였지만 제 나름대로 용기를 내서 밀어붙였죠. 운이 좋게도 유명한 시인이자 비평가인 존 야우가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론을 쓰면서 이름을 알리게 됐어요. 아직 한국에는 비평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지만, 뉴욕에서는 좋은 평론이 나오면 유명해질 수 있어요.
처음 컬렉팅을 시작할 때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당시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 텍스트를 이용한 작품에 매료되곤 했어요. 대표적으로 스테파나 매클루어의 ‘대화: Bookface ACAD 10pt: Courier 96 12pt’라는 작품이 있어요. 덩어리 두 개가 있는데, 이는 타자기에 있는 88개의 활자를 88번씩 던져 만들었어요. 덩어리가 대화를 하듯 움직이는 것 같더라고요.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틈 사이의 오해와 걱정도 보이고요. 영국 작가 조너선 캘런이 책을 둘둘 말아 완성한 오브제 역시 마찬가지예요. 원래 아크릴 박스 안에 있던 작품을 밖으로 꺼내놓았어요. 제가 평소 읽는 책 사이에 툭 올려놓고 일상의 물건처럼 즐기기도 하죠.
컬렉팅한 작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예술은 심오하게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너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 재미가 없더라고요. 무슨 의미인지 눈에 빤히 보이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는 조용히 속삭일때 귀를 기울이게 돼요. 토마스 파크 서울의 첫 전시 작가인 폴 팩을 좋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 폴 팩은 어떤 메시지를 강렬하게 담기보다는 담담한 순수 추상화를 그리거든요.
전시 기획이나 컬렉팅을 하는 기준이 있나요?
취향이 반영될 수도 있고, 본능적으로 작가나 작품이 끌릴 수도 있죠. 저의 경우, 좋은 작가를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래서 작가에 대한 애정이 중요하죠. 예술계에서는 애정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 많아요.
예술품을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저 소비 생활일 뿐이에요. 오늘 좋아서 샀는데 5년 후에 싫증이 나면 어떡하냐며 구입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5년 동안 그 작품으로 위안과 즐거움, 공간의 생기, 삶의 여유를 얻었다면 그 값어치를 다했다고 생각해요. 또 작품을 사면서 작가와 그 갤러리를 지원해줬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죠. 사실 중소 규모의 갤러리와 다수의 아티스트는 경제 상황이 많이 어렵거든요. 저는 실제로 작가에게 작품을 판 돈을 전달할 때가 가장 즐거워요.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돈을 벌 수가 없어요. 이처럼 미술 시장에서 활동하는 건 서로를 돕는 일이죠. 작가가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가치에 돈을 지불하는 거예요. 그거면 됐다고 생각해요.
최근 예술은 지나치게 금전적 가치로만 평가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것 말고도 예술은 우리 마음을 고양시키는 힘이 있을 텐데요.
예술은 인간의 내면과 세계, 정신이 신체적인 활동으로 표현된 거예요. 작품이 미술 시장에서 매겨지는 가치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죠. 최근 클럼지(Clumsy)라는 라이프스타일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에요. ‘서툴다’라는 뜻의 클럼지는 배우고 비우고 새롭게 하는 삶, 비워서 단순해지고 나눠서 풍부해지는 삶, 동서양을 배우는 삶을 추구하는 브랜드예요. 잘하겠다는 의도나 결과에 대한 기대, 자아를 내려놓고 그 과정 속에 존재할 때 삶에 위안과 활기를 얻을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클럼지에서는 결이 같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할 계획인데, 관련 인물 인터뷰나 칼럼까지 만나볼 수 있을 거예요.
아트 컬렉팅을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요?
거창하게 컬렉팅이라고 인지하기보다는 소비한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나이키 운동화 한 켤레 사는 것과 작품을 사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컬렉팅은 나중에 생각할 문제고요. 예술에 대한 이론을 습득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작품을 사는 순간만큼 많이 배울 수는 없어요.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도 중요하답니다. 그리고 쉽게 접근하길 바라요. 옷을 살 때 백화점에 가서 망설이지 않고 이것저것 물어보듯, 갤러리 문을 열고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일을 두려워 하지 마세요.
Contributing Editor 류진영, 박진명, 윤다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