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이혜정의 스윗한 라이프

by Styler USA

평온한 집, 나른한 오후, 편안한 산책과 대화. 요즘 이혜정의 일상은 만족과 감사로 가득 채워져 있다.

블루 컬러 슬리브리스 크롭트 니트와 팬츠 모두 COS

촬영장 오기 전에 잠깐 SNS를 봤는데, 남편(배우 이희준)에게 깜짝 선물을 받았더라고요.
가끔 특별한 날이 아닐 때도 불쑥 선물을 줘요. 겉은 무뚝뚝한 듯하지만 ‘오다가 주웠다’ 느낌으로 무심하게 툭 챙겨주는 성격이죠. 아이 재우고 나와 보니 테이블 위에 있던 빨래 더미에 올려 놨더라고요. ‘빨래를 왜 여기다 뒀어?’ 하다가 아이패드 박스를 보고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요. 꺅!(웃음)

그럼 생일처럼 특별한 날은 어떻게 보내요?
가까운 친구들을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어요. 둘 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제가 요리를 즐기거든요. 20인분 정도는 거뜬히 만들어요. 종종 남편이 요리를 해주기도 해요.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뒤처리에 손이 많이 간다는 거예요. 음식 하나 만들 때 조리 도구를 열 개씩 꺼내놓는 타입이랄까.(웃음) 그래서 가끔은 ‘마음만 받을게!’ 하기도 하죠.

그러고 보니 요리를 주제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 적도 있잖아요?
2년 전 ‘쏘스윗혜’라는 유튜브 채널을 열고 요리 콘텐츠를 올렸어요. 그러다 출산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꾸준히 하질 못했죠. 아이가 지금 22개월인데 조금씩 여유가 생겨서 다시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이미 몇 편 찍어놓기도 했고요. 빅마마 이혜정 선생님이 있으니 저는 ‘롱마마’로 이름을 지으면 어떨까요? 하하. 여기저기 요리 얘기를 많이 했더니 최근에는 관련 일들도 조금씩 들어오고 있어요.

JTBC <쿡킹: 요리왕의 탄생>을 보니 단순히 취미 수준이 아니라 정말 요리에 진심이던데요?
그럼요. 한식 자격증까지 땄는걸요! 얼마 전 <라디오스타> 출연 당시 사전 인터뷰 때 작가님에게 요리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 작가님이 ‘쿡킹’ 팀에 합류하면서 저에게 섭외 요청이 온 거예요. 출연자들이 판정단 앞에서 요리 경연을 펼치는 형식인데, 연락이 오자마자 ‘이건 내 판이다!’ 싶었죠. 그만큼 자신이 있었달까. 하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더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진짜 재미있어요.

요리는 언제부터 했어요?
뉴욕에서 모델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한식이 너무 비쌌거든요. 그러다가 남편을 만나고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이왕 하는 거 더 맛있고 보기 좋게 만들면 좋겠다 싶었죠. 결혼 전 남편은 라면 하나로 하루 끼니를 때운 적도 있대요. 그래서인지 감기를 늘 달고 살았는데, 저랑 만나고 나서는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이 없어요. 그런 데서 오는 뿌듯함도 있는 것 같아요.(웃음) 내가 한 요리를 누군가 맛있게 먹고, 건강해지는 것을 보니 더 잘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한식 자격증에도 도전한 거고요.

무언가를 시작하면 승부욕이 발동하는 타입인가 봐요. 운동을 오래 해온 영향일까요?
아무래도 관성처럼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농구가 정말 좋아서 열심히 했고, 어느 순간 유망주가 되어 있었어요. 어렵지 않게 프로팀에 입단해서 나름 만족스러운 선수 생활도 했고요. 똑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연습하고, 정신력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고된 훈련들의 연속이었어요. 그때 익힌 성실함이나 꾸준함, 근성 등이 제 성격이나 삶의 태도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그게 힘이 될 때도 있고, 조금 과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어요.

과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아주 일상적인 일에서도 목표 지향적인 성향이 드러날 때요. 등산을 가도 나무나 숲을 보는 게 아니라 정상에 빨리 올라가는 것에만 몰두하는 거예요. 여행을 가서도 편하게 즐기거나 음미하는 게 아니라 다음 목적지만 신경 쓰는 거죠. 아이에게는 “괜찮아, 천천히 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제 마음이나 행동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내 몸에 이미 입력된 속도를 어떻게 조절할 수 있게 됐나요?
남편은 제가 서두르거나 조바심 내면 늘 “혜정아 천천히 가도 괜찮아”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들도 조금씩 쌓이면 분명 또 다른 기회로 돌아올 거야. 조바심 내지 마” 같은 얘기들을 해줘요. 남편은 몰입했던 작품이 끝나면 일종의 테라피처럼 심리 상담을 받는데, 제가 한창 육아에 집중해 있을 때 자기가 하는 심리 상담을 권하더라고요. 가벼운 마음으로 별 생각없이 대화나 하고 와야지 하는생각으로 갔다가 그동안 몰랐던 제 성향을 알게 됐어요.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된 생활인 이혜정은 어떤 사람인가요?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스럽고 섬세한 것을 강박적으로 거부하는 성향이 있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해서인지 그런 것들이 ‘오글거린다’고 생각했어요. 예쁜 카페에서 혼자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나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못했을 정도로요. 어떤 순간에는 차분하게 나를 돌볼 줄도 알아야 하는데 늘 ‘괜찮아’ ‘잊어버려’ 하면서 애써 털어 버리고 서둘러 다음 스텝을 고민하는 거예요. 살다 보면 늘 괜찮을 수는 없잖아요. 어떤 때는 쉬어 가야 하는데 늘 마음이 분주한 거죠.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라도 그런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평창동의 마당 딸린 주택에 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가요?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 온 지 3년 정도 됐어요. 남편이 대구에서 올라와 줄곧 이 동네에서 살았고, 근처에 같이 일하는 동료와 선후배, 감독님이 많이 살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되었죠. 왠지 느긋하고 목가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컸는데, 웬걸요. 마당에 떨어진 낙엽을 보면 감상에 젖는 게 아니라, ‘언제 다 치우지’ 하는 생각부터 들어요.(웃음) 조금만 게을러도 마당이 금세 무성해지기 때문에 정말 몸이 쉴 틈 없어요. 하지만 그게 싫지는 않아요. 아침에 새소리 들으면서 잠에서 깰 수 있고, 주말마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마당에서 잔디 밟으면서 놀 수 있으니까요. 잠깐 짬 내서 남편이랑 동네 뒷산에 오르기도 해요. 같이 걸으면서 얘기도 많이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요. “요즘 어때, 괜찮아?” 하면서요.

좋은 질문이네요. 요즘 혜정 씨는 어떤가요? 괜찮나요?
아주 좋아요.(웃음) 요리도 재미있고, 더 좋은 모델이 되기 위해서 시작한 연기 수업도 계속 받고 있고요. 5년 정도 됐는데 차근차근 꾸준히 하다 보니 크고 작은 결과물로 이어지더라고요.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훨씬 단단해졌죠. 앞으로 뭐든 잘 해나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 더 멋진 삶이 펼쳐질 것 같아서 무척 설레요.

 

차근차근 준비해온 것들이 크고 작은 결과물로 이어져요.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훨씬 단단해졌죠.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척 설레고요.

 

Editor Kim EunHyang
Photographer SONG SI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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