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서 10년째 잘 살고 있습니다

by Styler USA

통인시장을 가로지르면 여러 갈래의 골목이 나타난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한옥들이 끝을 알 수 없는 미로처럼 적막해질 무렵 작가 장보현과 사진가 김진호의 보금자리에 다다른다.

얼키고 설킨 골목 앞에서 제 기능을 못하는 GPS를 끄고 기억의 감각으로 부부의 집을 찾아 낡은 대문을 두드렸다. ‘초인종이 없었나?’ 하며 두어 번 노크를 하자 김진호 작가가 문을 연다. 인터폰과 버튼 하나로 문을 여닫는 시대가 된 지 오래되었는데도 초인종조차 없는 부부의 삶이 전해진다. 도심 한가운데서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작은 한옥을 돌보며 살고 있는 부부는 한옥 생활로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내가 되고 내일의 내가 그다음 날의 내가 되는 지속성의 연결고리를 찾는 삶을 전한다. 거창할 것도 없다. 오늘은 오후 4시에 해가 지니 내일은 해가 빨리 뜨겠다고 자각하는 것 ,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살뜰히 챙기면 자신의 삶을 돌볼 수 있는 지속가능한 힘이 생긴다는 걸 알고 있는 일상이다.

방 하나에 작은 부엌, 길다란 거실, 그리고 그 옆에 딸린 천장 낮은 화장실과 창고, 작은 마당을 합한 면적은 어느 정도인가요?
장보현(이하 ‘장’) 마당까지 모두 약 76m²(23평)예요. 주거 공간만 따지면 12평 남짓이에요. 원래는 지금보다 더 작았는데 전에 살던 사람들이 마당을 조금씩 줄이고 주거 공간을 더 넓혔어요.

얼마나 오래된 한옥인가요?
김진호(이하 ‘김’) 등록대장에 1930년대라고 적혀 있는데, 아마 100년도 더 됐을 거예요. 일제강점기에 ‘정세권’이라는 분이 익선동, 북촌 그리고 서촌에 근대식 한옥을 대량으로 지었대요. 일본의 적산가옥이 점점 많아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또 집을 팔고 남은 돈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고 전해지고요. 당시에는 정세권 씨가 전통 한옥을 짓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대요. 도심 주거형 한옥에 맞춰 근대식으로 타일이나 유리를 썼기 때문이었나 봐요. 지금 와서는 역사가 있는 한옥을 이렇게나 많이 남겼으니 재평가받고 있다고 해요. 한옥에 살며 우리 집이 도대체 어떻게 지어졌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따라가다 보니 이런 비하인드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어요.

오래된 한옥을 고쳐서 산 지 벌써 10년째라 들었어요. 한옥에서 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둘 다 어린 시절에 살던 한옥에 대한 기억이 강렬해요.
독립한 후부터 쭉 원룸에서 살다가 일 때문에 자주 이 동네에 오게 됐는데, 나즈막하게 정렬된 오래된 주택들을 보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곳 서촌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하게 됐고 그렇다면 한옥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시절 대청마루에서 놀던 때가 가장 좋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르더라고요. 이번 봄엔 드디어 저희 둘이서 원래 있던 장판을 뜯고 티크 원목으로 채웠어요.
한옥의 아름다움은 역시 나뭇결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열 평 남짓한 공간에서 아내는 글을 쓰고 남편은 아내의 모습을 기록한다. 한옥으로 이사한 후 부부의 일상을 담은 책도 세 권이나 탄생했다. 먹는 일상을 담은 《도시 생활자의 식탁》, 한옥에서 고스란히 마주한 절기를 기록한 《지금 여기에 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탈고한 따끈따끈한 새 책까지. 부부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무엇이냐 물으니 입을 모아 ‘일상 안에 작업이 들어온 순간’이라 말했다. 타오르는 영감과 부부의 손끝에서 완성된 책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에서 비롯됐다.

10년 동안 차근차근 한옥의 형태로 돌려놓고 있네요. 이 집을 처음 만났을 땐 어떤 모습이었나요?
 답답할 정도로 꽉 막혀 있었어요. 시대별로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집도 변화한 거예요. 이를테면 해방 후에는 양옥이 들어오면서 양식의 느낌으로 집을 변형시켰고, 아파트가 유행하기 시작할 때는 천장과 벽을 모두 일자로 평평하게 고치고 주방도 상부장이 딸린 싱크대에 맞춰졌지요. 처음 들어왔을 땐 한옥인지 아파트인지 모를 정도로 한옥의 모습은 아예 없었어요.

 한옥인지 알 수 있었던 요소는 2~3mm정도 남은 처마 끄트머리밖에 없었어요. 막혀 있던 천장과 벽을 다 부수고 나니 비로소 본모습을 찾게 되었죠.

세월이 켜켜이 쌓인 한옥을 뜯고 고치며 당연히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처음엔 세 들어 살면서 대공사를 하려던 생각은 없었어요. 한옥을 고치게 된 시작은 천장이었어요. 배가 나온 것처럼 볼록한 천장에서 계속 흙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데 스트레스를 적잖이 받았죠. 천장을 고치자는 생각으로 휴대폰이 들어갈 만큼의 작은 구멍을 뚫어 안쪽을 찍어봤어요. 한옥의 지붕 골조를 이루는 나무의 색과 상태가 생각보다 좋더라고요. 괜찮을 것 같아서 천장에 발라놓은 도배지를 모두 뜯었죠.

 저희가 몰랐던 부분이 있었어요. 천장의 가운데만 잘 관리가 되어 있고 양옆은 마감 처리가 되지 않은 황토더라고요. 아마 처음 지을 때부터 단열 때문에 천장을 막고 살았던것 같아요.
한국의 겨울은 혹독하잖아요.

벽과 천장의 도배지를 다 뜯고 회벽칠만 했나요?
 맞아요. 한옥이 처음 만들어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요. 공사를 할 때 1980년대에 발행된 신문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벽지를 열 겹 넘게 뜯고 또 뜯으니 공간이 넓어질 정도였어요. 덕분에 숨을 못 쉬고 있던 나무도 숨통이 트였죠.

이런 걸 보니 우리는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역사의 이해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마치 벽지를 그 위에 덮고 또 덮고 덮은 것처럼 말이에요.
 이번에 장판을 뜯고 보니 동 파이프에 미세한 구멍이 나 물이 조금씩 새고 있더라고요. 모르고 살았던 거죠. 이렇게 집을 돌볼 기회가 생겨서 잘 고치게 되었어요.

 오래된 집을 돌보는 게 쉬운 일은 절대 아니에요. 늘 관찰해야 하니까 시간이 많아야 하는데, 바쁜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장판과 벽지를 뜯고 나무를 같은 크기로 잘라 바닥에 이어 붙이는 일은 그간 잊고 살았던 두 손의 감각을 되살려주었다.
그 감각을 통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기르고 돌보는 일상이 지속된다.

아내가 글을 쓰고 남편이 사진을 찍은 두분의 삶에 대한 기록인 책 《도시 생활자의 식탁》과 《지금 여기에 잘 살고 있습니다》도 잘 봤습니다.
한옥에서 살기 이전에도 직접 손으로 만들어 먹고 뭔가를 해내는 일을 좋아했나요?

 한옥에 오면서 완전히 달라졌어요. 습관적으로 집을 돌보면서 손을 쓰는 감각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죠. 햇볕이 잘 드는 옥상이 있으니 허브도 직접 키우고 요리도 하게 됐어요.

 한옥에서는 뭐든 직접 나서야 해요. 전문가를 부른다고 하면 날마다 불러야 할 정도거든요. 어제도 비가 많이 왔는데, 당장에 비가 새지 않더라도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관리해야 해요. 한옥이 저희를 부지런한 인간으로 단련시키고 있어요.

한옥에 살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무엇인가요?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었다는 거예요. 한옥에 들어오면서 첫째 미셸이 왔어요. 그리고 차례로 꼬망이, 금동이까지 가족이 되었어요. 이곳은 옥상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어 별다른 캣타워 없이 고양이들의 움직임을 충족시켜줄 수직 이동 공간이기도 하고, 작지만 마당도 있고 햇빛도 잘 드니 고양이들에겐 최적화된 공간이에요.

 이런 작은 존재들에 대한 공감 능력도 살아난 것 같아요. 미셸과 꼬망이는 입양했지만, 금동이는 옥상에서 태어났어요. 가끔 길고양이가 배가 부른 채로 저희 집 옥상에 한 번씩 와요. 그러다 몇 주 뒤엔 새끼들을 데리고 오기도 하고요. 또 식물이나 벌레는 말할 것도 없고 족제비가 올 때도 있어요. 도심에서도 이런 살아 있는 존재들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는 게 날마다 재밌고 새로워요.

올봄에 이 한옥을 매수했다고 들었어요. 이곳에서 꼭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오래된 것들에 대한 애정이 깊어요. 10년 정도 이 집에서 잘 지냈기 때문에 떠날 생각이 없었어요.

 이 동네의 매력에 제대로 빠진 것 같아요. 역사적으로는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많이 살아서 영감도 많이 얻는 편이고, 유동인구가 적어서 안정적이죠. 실제로 주말을 빼고는 그냥 조용한 마을이에요. 어린아이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터를 잡고 쭉 사는 동네이기도 하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기업 총수가 사는 집이 있는 반면, 그 옆에 바로 쪽방 노인들이 어우러져서 살고 있어요. 모든 세대와 인구를 아우르는 동네의 매력에 매료돼 집 구입을 망설일 필요가 없었죠.

거실 마루 프로젝트 이후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2층을 올리고 싶어요. 옥상에서 보는 인왕산 뷰가 아주 멋있는데, 그 풍광을 집 안에서도 바라보고 싶어서요.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예요.(웃음)

한옥은 두 분이 만드는 콘텐츠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한옥에서의 생활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라이프스타일이죠. 이상할 것 없이 자연스러운 삶.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빗물이 좀 새도 그 계절을 온전히 느끼는 삶이랄까.
오히려 이제는 신축 공간에 가면 꽁꽁 샐 틈 없는 단열에 숨이 막혀요. 공기가 정체되어 있으니 순환도 안 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인간이 살면서 필요한 것들, 혹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당연하게 해내는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나무와 타일을 직접 잘라 붙이고 물 새는 곳은 손을 보고 하면서요.

Contributing Editor 박진명
Photographer 정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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