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 나고 자란 송지혜 대표는 도시가 발전할수록 시골로 가고 싶어 하는 회귀 본능이 커진다고 믿는다. 인간이 그 본능을 따라 시골에 왔을 때 느끼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전하기 위해 강릉으로 돌아왔다.
송지혜 대표의 말에 따르면 강릉은 대도시의 복잡한 형태를 띠는 지역으로 변화할 수 없다. 고도제한이나 여러 가지 군사적인 요소 등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또 태백산맥이 감싸고 있는 강릉은 산세가 높지 않아 건물이나 도시의 형태가 수평적으로 발달하는 경향이 있어 옛 모습이 오래 유지될 것으로 판단한다. 송 대표는 이러한 강릉의 지역적 특성을 잘 살린 로컬 브랜드를 만들었다. 도심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강릉의 시골길에 눈길을 빼앗기다 보면 당도하는 곳 ‘르꼬따쥬’는 농가 주택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강릉에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강릉이 고향이에요.
지금 운영하고 있는 이 가옥은 선조들이 200년 정도 살아온 집이에요. 그래서 강릉으로 오게 됐다기보다는 돌아왔다고 할 수 있죠. 원래 호텔에서 일을 했거든요. 그러다 강릉에 있는 씨마크호텔에서 일할 기회가 생겨 고향에 와서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프랑스어로 농가 주택을 의미하는 ‘르꼬따쥬’는 어떤 공간인가요?
이곳은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시골 분위기와 자연을 즐기기에 제격인 곳이에요. 할머니 집이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 동생들과 뛰논 기억도 있는 곳이고요. 이렇게 좋은 추억이 스민 곳에서 다른 분들도 잊지 못할 시간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든 공간이에요. 요즘 자연 속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는 늘었지만 사실 그런 곳들은 사람이 많잖아요. 조용하고 한적하게 자연이 주는 호사를 누리며 커피와 와인을 마시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나아가 결혼식까지 계획하는 곳이 되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동생들이 제 아이디어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며 르꼬따쥬를 오픈하게 됐어요.
르꼬따쥬에 적힌 ‘카페 아닌 농장’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제가 추구하는 방향은 카페가 아니라 농장이에요. 일반적인 농장 틀에서 벗어난 ‘융합 농업’이라고 해요. 농가 주택 안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공용 건물을 비롯해 정원을 두 공간으로 분리하고 밑에 있는 오두막까지 총 세 공간을 프라이빗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 결혼식부터 돌잔치, 파티, 모임, 가든 마켓, 콘서트까지 다양한 일들을 해요. 무엇을 하든 현재의 유행에 맞춰 변화하되 자연과 시골이 콘텐츠의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옆집은 개인 주택인 것 같은데 어떤 인연이 있나요.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이에요. 그래서 가끔 부모님의 손을 빌릴 때도 있지만, 정원과 모든 건물은 우리 삼남매가 힘을 모아 관리하고 있어요. 조경부터 잔디, 인테리어까지 모두 우리의 손을 거쳤죠. 전문가의 손길을 빌리면 훨씬 깔끔해지겠지만 우리만의 자연스러움에서 묻어나는 긍정적인 면도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이 정원에는 자생하는 야생화가 많아요. 그중에서도 쑥은 베지 않고 그대로 두면 1미터까지 자라기도 하거든요. 도시에서 오는 손님들은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을 발견하고는 신기해하고 즐거워해줘요. 그럴 때마다 직접 만들어가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고요.
가족끼리 운영하면서 생기는 갈등도 있을 텐데요.
처음에 공사할 때 ‘옛날에는 이렇게 했으니까 이 방식이 맞다’라는 생각들 때문에 갈등이 있었어요. 그럼에도 잘 풀어나갈 수 있었던 건 이 공간이 선조들이 대대손손 살아온 터전이기에 보존하고 유지해야 하는 건 후손들의 몫이기 때문이에요. 또 르꼬따쥬의 주 고객층이 우리 나이대라서 우리의 취향이 곧 그들의 취향이라는 말에 설득이 됐죠. 아버지가 자식들의 손을 많이 들어줬어요. 그 외의 갈등은 일하면서 생길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고요. 궁극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 지점이 같다 보니 확고한 방향성이 동력이 되곤 해요.
공간을 운영하면서 추구하는 가치나 철학이 궁금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강릉,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자연과 시골의 고유 매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트렌드와 접목하는 거예요. 전원 생활은 대부분 부모님 세대의 몫이었거든요. 젊은 사람들은 삽질하고 손에 흙 묻히는 데 익숙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시골 생활을 해서인지 그게 편하고 익숙해요. 공간을 예쁘게 꾸며놓으면 젊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흥미를 느낄 거라 생각해요.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20대 초반인데 친구들하고 이렇게 시골에 갈 일이 있을까 싶어요. 그렇게 부모님 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 다리를 놔주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르꼬따쥬를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손님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 여기 잘 돌아왔구나’라고 생각하게 하죠. 가장 좋은 순간은 가족 삼대가 와서 함께 어우러져 즐길 때에요. 젊은 친구들은 예쁘게 사진을 남길 수 있어서 좋고,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옛날 시골집 분위기에 취해서 좋고. 그런 장면들이 이 공간의 의도를 가장 정확하게 간파한 거죠. 그럴 때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해요. 강릉으로 이주하면서 가장 많이 변화한 건 무엇인가요?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중요하지 않게 보일 때가 문득문득 있어요. 전에는 경쟁에서의 승리나 타인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가 중요했거든요. 그런데 강릉의 자연 앞에서는 그런 것들이 무의미해요. 그저 하루하루 즐겁게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많이 느껴요.
강릉이라는 지역의 가능성은 어떤 것인가요?
결국 사람들은 도시가 발전할수록 시골로 가고 싶어 하는 회귀본능이 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도시 생활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삶에 지치고 힘들 땐 조용하고 자연환경이 뛰어난 곳을 찾곤 하잖아요. 강릉은 아무리 발전 해도 도시 형태로 변화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고도제한도 있고 공군 비행장 같은 군사적인 요소도 얽혀 있고요. 태백산맥이 감싸고 있는 데도 높지 않은 산세 같은 것도 강릉의 매력이고요.
강릉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바다나 계곡처럼 물이 있는 곳이 좋더라고요. 밥이나 커피, 와인 한잔을 하고 싶을 때도 저는 늘 바다로 가요. 자연 환경 자체를 즐기는 편이에요.
비성수기인 겨울은 주로 무얼하면서 보내나요?
동면에 들어가요.(웃음) 겨울은 농한기잖아요. 인간도 겨울에는 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2월이 되면 봄을 준비하죠. 지금도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나무나 식물들을 관리하는 시기라 기지개 켤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겨울엔 눈이 내리잖아요. 설경을 즐겨야죠.
창업을 할 때 도시와는 다른 어려운 점이 있을 것 같아요.
많이 달라요. 일단 가장 먼저 결정을 해야 하는 건 타깃을 지역민으로 할 것이냐, 관광객으로 할 것이냐예요. 지역민과 관광객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창업은 가장 어려운 일이고요. 도시는 다양하고 많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명확한 타기팅이 필요 없죠. 다만 좋은 점은 지역에서는 제반 비용이 적다는 거예요. 조금 더 천천히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르꼬따쥬의 새해 계획을 알려주세요.
시내에 작은 숍을 준비하고 있어요. 르꼬따쥬의 콘셉트를 또 다른 형태로 조금 더 접근성 있게 제공하려고요. 지금 이곳은 차가 없으면 당연히 오기 힘들고, 마음을 먹고 와야 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요. 그래서 접근성이 좋은 곳에 르꼬따쥬의 감성을 조금 더 편안하고 쉽게 전할 수 있는 공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르꼬따쥬가 자리한 이 마을 전체를 최대한 옛 모습을 유지하면서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집성촌이라 저 멀리 보이는 건넛마을에 사는 분들도 대부분 친척이에요. 마을에 청년들이 없다보니 언젠가는 다 매매할 집들이잖아요. 마을의 정체성과 가치를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우리가 자연과 문화유산이 있는 마을로 발전시켜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