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리 터틀넥 크롭트 톱 니트와 블랙 슬릿 레깅스 모두 COS.
윤혜진은 삶을 바라는 방향으로 이끌 줄 아는 힘을 지녔다.
어제오늘 식사를 제대로 못했다고요.
화보 촬영부터 방송 녹화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어요. 촬영을 앞두고는 아무래도 부기 때문에 먹는 걸 조심하게 돼요. 조금만 부어도 카메라 앵글에는 크게 부각돼 보이거든요. 무대에 섰던 경험 탓인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요.
흔히 먹기 위해 운동한다고 하잖아요. 몸이 온통 근육인데도 마음껏 먹지 못하는 군요.
평소에는 잘 먹어요.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런데 하필 먹고 싶은 것들이 죄다 짠 음식들이라.(웃음) 아무리 운동을 꾸준히 해도 염분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부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촬영 때는 어쩔 수 없이 먹는 걸 조절하는 편이에요.
JTBC <내가 나로 돌아가는 곳-해방타운>(이하 ‘해방타운’)을 통해 본격적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죠. 유튜브 채널 ‘What see TV’를 3년 가까이 운영 중이지만, 방송은 결이 조금 다르잖아요. 어떤가요?
제게는 아주 큰 도전이었어요. 그냥 좋아하는 유튜브와 옷 만드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제 채널을 PD님이 보고 연락을 주셨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처음엔 좀 망설였는데, 편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고 해서 ‘그건 내가 잘하는 거지’ 싶은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어요. 출연 횟수를 정하고 시작한 것도 아니라 막연하게 몇 번 나오고 말겠지 생각했는데 벌써 28회가 됐네요. ‘해방타운’이랑 사계절을 보내게 될 줄이야!(웃음) 종종 걱정이 되긴 해요. 사람들이 제 얘기를 계속 재미있어 하나 싶은 거죠. 중간에 PD님께 그만해야겠다고 했더니 거두절미하고 “안 된다. 계속해야 한다”고 해서 아직 붙어 있어요. 하하. 감사하면서도 좀 얼떨떨해요.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발레 연습실을 찾아간 혜진 씨 모습이 유독 기억에 남아요.
처음 방송을 시작하면서 제작진이 “온전히 자신으로 돌아갔을 때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뭔가요?” 물었을 때 1초의 고민도 없이 발레가 떠올랐어요.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연습실에 갔는데, 들어서는 순간 울컥하는 거예요. 원 없이 무대에 섰고, 마음에서도 어느 정도 내려 놓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진짜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발레 하는 후배들, 동료들을 보니까 억눌렀던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스스로도 놀랐어요. 그때 내가 정말 춤추는 걸 좋아하는구나, 발레를 사랑했구나 새삼 깨달았죠. 사실은 많이 그리웠는데, 계속 ‘괜찮다’고 억지로 마음을 달래고 있었나 싶고.
사람들은 평소엔 자각하지 못하지만, 끝내 잊을 수 없는 꿈들 하나씩은 품고 사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혜진 씨 모습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던 것 같고요.
특히 여성 시청자들이 많이 공감해주시더라고요. 제가 원래 여자들한테 좀 인기가 많아요.(웃음) 보통 결혼하고 출산을 하면 아이라는 새로운 꿈이 생기면서 그전의 삶은 잊고 살게 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해방타운’은 제게 단순히 방송의 기회라기보다는 잊고 있던 내 모습을 다시 되찾고, 스스로를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해준 프로그램이에요.
출연자들과도 부쩍 친해진 느낌이에요. 특히 장윤정 씨와는 어느새 ‘찐친’ 케미가 나오던데요?
아, 윤정이, 정말 좋은 친구죠! 처음에는 그 유명한 장윤정이 제 옆에 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신기했어요. 알고 보니 나이도 같고, 결혼한 햇수도 같고, 또래 아이를 키우고, 공통점이 아주 많은 거예요. 윤정이는 처음에 제가 가식적인 사람 같아서 별로였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평생 무용을 한 배우 아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왠지 예민하고 새침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너무 털털하고 꾸밈이 없어서 ‘컨셉’인 줄 알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좀 지내다 보니 ‘얘는 정말 이게 다구나’ 싶더라나. 하하. 지금은 제가 항상 의지하는 친구가 됐죠. 방송이든 사적인 일이든 윤정이한테 컨펌을 받아야 안심이 돼요. 워낙 아는 것도 많고 경험이 풍부해서 뭘 물어도 척척 대답해주는 그런 사람이거든요.
다른 분들은 어떤가요?
종혁 오빠는 처음에는 좀 별로였어요.(웃음) 뭘 물어도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말투도 약간 틱틱대는 느낌이랄까. 저를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죠. 그런데 정말 속정이 깊고 ‘츤데레’예요. 지금은 이른바 티키타카가 잘 맞는, 제가 진짜 좋아하는 오빠죠. 허재 감독님도 굉장히 푸근한 성격이고, (백)지영 언니는 어쩜 그렇게 잘 챙겨주시는지 매번 감동을 받아요. 다들 이렇게 궁합 잘 맞는 사람들끼리 방송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더라고요.
혜진 씨를 보면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으로 인생을 살고, 그게 궁극적으로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 같아요. 그런 삶의 태도는 타고난 건가요?
타고난 기질까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남의 인생 말고 내 인생 살아야지’라는 생각은 확고했어요. 그리고 동시에 늘 들었던 말이 ‘겸손하라’였죠. 아버지도, 삼촌도 다 배우였기 때문에 괜히 헛바람이라도 들까 봐 어른들이 더 엄하게 대했어요. ‘이쪽은 신경 끄고 가서 발레나 해’ 이런 분위기였으니까요. 그러면서 유학을 결심하고, 쭉 한길을 걸어온 거예요. 오히려 내면이 단련된 건 20대 이후예요. 말도 안 되게 힘든 상황들을 견디면서 매일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그게 다였거든요. 기댈 게 나 말고는 없으니까 무조건 나를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자신을 믿는다는 것, 아주 당연하고 단순한 진리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죠.
맞아요. 하지만 어떤 상황이 와도 쉽게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 기준이 분명해야 해요. 내가 나를 믿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건강하게 기댈 수 있거든요.
생각해보니 혜진 씨를 늘 더울 때 만났네요. 겨울은 주로 어떻게 보내나요?
사실 전 겨울을 딱히 좋아하지 않아요.(웃음) 오히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죠. 어쩌겠어요. 겨울이 지나야 또 여름이 오는 걸요. 지금이야말로 ‘이불 밖은 위험해’ 같은 때잖아요. 집에서 가족들과 따뜻하고 차분하게 올겨울을 보내려고요. 저는 철저히 계획을 세우는 타입은 아니지만 기회가 온다면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에요. 아마 그날그날의 기분대로 평범한 겨울을 나지 않을까요?
Editor KIM EUNHYANG
Photographer SONG SI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