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와 과일로 꾸린 건강한 식탁

by Styler USA

채소와 과일은 일상에서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자연이다. 한 점도 버리지 않고 감사히 먹을 때 인간과 지구 모두에게 건강한 식탁을 만들 수 있다.


버릴 것 없는 식탁
류지현

하루 평균 버려지는 쓰레기 중 24.7%가 음식물이다. 일회용기, 비닐, 택배용 스티로폼 등의 포장재를 함께 고려할 때 주방에서 배출되는 쓰레기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주방을 잘 관리하기만 해도 우리는 꽤 많은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생활 속에서 접하는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류지현 작가는 이탈리아에 머물며 꽤 오랜 시간 음식물 쓰레기에 관심을 쏟고 있다. 5년간 유럽, 남미를 여행하며 기록한 책 «사람의 부엌»을 출간한 그는 ‘Save Food from the Fridge(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해내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음식 섭취는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행동으로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죠. 그만큼 식생활 선택은 개인부터 공동체, 나아가 지구 전체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나치게 많은 음식물 쓰레기 문제에 집중했어요. 음식물 쓰레기의 원인 중 하나는 냉장고의 오남용이었습니다. 이제 식재료는 하나의 상품으로 여겨져요. 상해서 버려도 언제든 쉽게 다시 살 수 있기 때문이죠. 냉장고는 그 식품들을 영원히 보관해줄 것만 같은 마술 상자 역할을 하고요.” 류지현 작가는 냉장고에 의존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식재료 각각의 특성에 따라 보관하고 껍질과 뿌리까지 먹는 방법을 연구해 책 «제로 웨이스트 키친»을 썼다. 작가는 먼저 “냉장고에만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식재료를 눈앞에 두고 관리하라”고 말한다. 선반, 테이블, 물그릇 등에 식재료를 보관하면 불필요하게 장을 보는 횟수가 줄어들뿐더러 버리는 음식물의 양도 현저하게 준다. “자신의 식습관과 함께 부엌의 리듬을 찾아내는 것이 새로운 식생활의 시작입니다. 일주일에 몇 번 장을 보는지, 자주 쓰는 식재료는 무엇인지, 그 식재료를 며칠 동안 먹는지, 또 각각의 식재료를 식탁, 베란다 혹은 냉장고에서 얼마나 보관할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알고 우리 집 부엌만의 리듬을 찾아내야 해요.” 리듬에 따라 주방 규칙을 정해야 한다. 또 식재료는 특성에 따라 상온, 냉장, 냉동 보관한다. 작가는 식재료를 구분·보관하는 팁으로 시장이나 슈퍼마켓에서 어떻게 판매하는지 살펴보기를 권한다. 매대에 물을 뿌려주는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지, 냉장칸에 진열되었는지 살피면 보관 방법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있어요. 식재료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썩혀 버릴 수도 있죠. 이때 반복적인 실천이 필요해요. 처음 운동을 배울 때 익숙하기까지 꾸준히 연습해야 하듯 새로운 식생활을 꾸려 나가는 데도 연습과 노력이 필요해요.” 제로 웨이스트 주방을 위해서 우선 채소와 과일 껍질에는 풍부한 영양소가 있으니 최대한 남김없이 먹는다. 간혹 껍질째 요리를 하면 맛이나 식감이 달라져 난감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 껍질을 벗겨 요리하되 껍질 자체를 또 다른 식재료로 사용한다. “양파, 당근, 파, 무 등의 껍질은 잘 말려 국물을 낼 때 쓰면 유용합니다. 감자, 호박, 당근 등의 껍질은 튀기면 간단한 스낵이 되고요. 또 말려두었다 튀기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어요. 사과 껍질이나 씨앗, 심지 등은 설탕물에 발효하면 식초가 돼요. 버려질 뻔한 식재료를 요긴하고 건강한 식재료로 만드는 방법이죠.” 또한 요리 후 남은 식재료는 저장 음식으로 만든다. 애호박은 그릴에 구워 올리브유에 재우고, 토마토는 소금과 함께 냄비에 넣어 기름을 두르고 익힌 뒤 유리병에 담아 중탕해 밀봉한다. 대신 6개월에 한 번씩 저장 재료를 정리해 오래된 것을 우선적으로 먹고 간장 장아찌나 과일 퓨레, 토마토소스 등은 양이 많다면 다시 끓여 새로 밀봉해 저장한다. 류지현 작가의 조언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지만, 코로나19로 배달 음식이나 밀키트가 보편화된 한국에서 개별 식재료를 구입해 요리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팬데믹은 자주 식재료를 살펴보고 관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제 부엌도 한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채소를 넣은 된장국, 쌀밥, 고등어구이와 김치처럼 간소한 밥상을 즐기죠. 독자분들도 식재료에 대해 알아가며 자신이 먹는 음식을 스스로 관리하고 준비하는 기쁨에 익숙해지길 바라요. 배달 음식이나 밀키트는 하나의 선택이죠. 편리해서, 요리를 즐기지 않아서, 또 마케팅에 현혹되어서일 수도 있죠. 배달 음식이나 밀키트를 이용할 때도 불필요하게 많이 주문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남기지 않고 먹거나 남은 음식을 재활용할 수 있는 요리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부엌은 다른 생명으로 우리의 생명을 이어가는 곳이에요. 도시 생활에서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자연은 바로 채소와 과일이죠. 부엌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낭비 없이 식재료 각각의 맛과 영양을 즐길 수 있길 바랍니다.”

Zero Waste Kitchen Tip
➊ 채소나 과일은 특성에 따라 정리한다. 양배추와 콜리플라워는 물을 담은 접시 위에 올려 보관하고, 포도나 토마토, 바나나는 매달아둔다. 깻잎은 저온 상해를 쉽게 입기 때문에 잎자루만 물에 잠기도록 세운 뒤 유리 용기에 담아 상온에 보관한다.
➋ 파나 부추, 깻잎과 고추, 허브 등은 직접 길러 필요할 때마다 수확해 먹는 것도 방법이다. 볕이 잘 드는 주방 한편이나 발코니를 작은 정원으로 삼아 채소를 기르며, 우유물이나 쌀뜨물을 거름으로 준다.
➌ 냉장고에 의존하지 않는 삶을 고민 중이라면 류지현 작가의 프로젝트 ‘Save Food from the Fridge’의 홈페이지 (www.savefoodfromthefridge.com)와 인스타그램 계정 (@savefoodfrom thefridge)을 참고할 것.


먹을 만큼만 수확하는 채소
투 더티 보이즈

마트에서 산 채소나 과일로 요리를 하고 남은 조각들을 버리는 건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난 후 플라스틱 용기를 버리는 것에 비하면 죄책감이 제로에 가깝다. 국내에서 한 해에 버려지는 음식물만 600만 톤. 그래도 음식 쓰레기는 썩으니 무해할 거라 여기기 쉽지만, 그건 먹거리를 포장하고 운송하는 과정에 배출되는 어마어마한 탄소량을 간과해서다. 그날 먹을 만큼의 과일과 채소를 수확해 샐러드를 만들고 냄비 요리를 하는 자급자족 라이프를 꿈꾸지만 텃밭이 없어 이내 포기하고 마는 이들도 많다. 무심코 버리는 자투리 채소들을 다시 길러 먹는 ‘투 더티 보이즈(Two dirty boys)’의 폴 앤더튼, 로빈 달리를 보면 반드시 텃밭을 가져야만 그 로망을 이룰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10여 년 전 핼러윈 파티에서 만나 절친이 된 이들은 버려지는 채소들을 원래 모습으로 가꾸는 홈파밍(Home + Farming) 라이프를 담은 책 «홈파밍을 시작합니다»를 통해 누구나 어디서나 자투리 채소를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함께 파인애플을 재배하고 할머니와 정원을 가꾸며 낭비하지 않고 다시 사용하는 지혜를 절로 배우게 됐어요. 매일 바쁘게 살던 어느 날,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음식을 낭비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작은 실천이라도 해야겠다 싶었죠.” 이들이 홈파밍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도전한 건 대파. 다양한 요리에 두루 쓰이는 파는 버려지기도 쉽지만 손쉽게 키울 수 있는 대표적인 채소다. “처음 파 키우기를 시도했을 땐 악취가 나기도 했어요(웃음). 대파는 최소 이틀에 한 번씩 물을 갈아줘야 한다는 걸 명심하세요.” 매일 아침 새로운 물로 바꿔주는 일이 별것 아닌 듯해도 작물을 신선하게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홈파밍을 시작하며 일상도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꼈다.

“매일 물을 가는 것은 하루를 시작하기에 무척 좋은 루틴이에요. 마치 농부들이 매일 아침 농작물을 가꾸는 것과 같죠.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아요. 바깥의 소란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기르는 데 집중하는 일과를 하루의 일부로 만든다는 건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투 더티 보이즈는 과일과 채소를 길러 먹는 홈파밍 라이프를 통해 음식물 쓰레기도 25%나 줄였다. 식재료를 거의 남기지 않고 몽땅 사용하는 한국의 발효 식품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전한다. “소금에 절인 배추 등 건강에 좋기까지 한 한국의 음식들이 요사이 영국에서 인기가 많아요.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낭비를 줄이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시도하게 돼 아주 신이 납니다.” 물론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투 더티 보이즈가 살고 있는 영국의 겨울은 낮이 짧아 비트, 대파, 민트, 박초 같은 잎이 무성한 식물이 잘 자란다. 따뜻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파인애플을 재배할 땐 무척 애를 먹기도 했다. 파인애플 자투리에서 뿌리가 나오기까지 총 네 번의 시도를 거쳤다고. 특히 망고 씨앗은 아무리 해도 발아시킬 수 없었다. 느타리 버섯은 홈파밍 중에서도 꽤 까다로운 작물이다. 균사체가 보이는 신선한 버섯 줄기여야 다시 키우는 것이 가능한데 온도, 조도, 습도 모두 이상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전문가에게만 추천한다. 초보자에게 추천하는 작물은 대파, 비트, 민트.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물이 신선하게 유지되는지, 잎이 썩지 않는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한 부위가 썩으면 순식간에 전체로 퍼지기 때문이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twodirtyboys)에 홈파밍 성공담뿐만 아니라 망친 사례까지 가감 없이 나누는 투 더티 보이즈는 홈파밍에 도전하려는 이들에게 실패를 통해 배우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해요. 소셜 미디어와 달리 인생은 항상 완벽하지 않잖아요. 홈파밍을 망설이고 있다면 일단 한번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만약 전혀 자라지 않는다고 해도 어차피 쓰레기가 됐을 거라 생각하며 또 새로운 작물을 시도해보는 거죠. «홈파밍을 시작합니다»는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단계별로 안내합니다. 홈파밍이야말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죠. 일단 시작하면 너무 재미있어서 다시는 이전 생활로 돌아가지 못할 거예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투 더티 보이즈가 홈파밍을 권하는 이유는 또 있다. “홈파밍은 쓰레기를 생각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일으켜요.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지 않더라도 절로 식재료를 덜 구입하게 되죠. 홈파밍을 통해 무엇이 낭비되고 또 어떤 것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지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할 필요가 있어요. 비록 홈파밍이 인류를 구원할 순 없지만 쓰레기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다는 점에서 그 변화는 결코 사소하지 않죠. 함께 한발 한발 내디딘다면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Home Farming Tip
➊ 햇빛이 잘 들면서도 서늘한 주방 창턱은 파를 키우기에 이상적인 장소다. 처음 24~48시간 내에 절단면 윗부분 모양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새싹이 나오고 몇 주 내 눈에 띄게 자라 요리에 쓸 수 있게 된다.
➋ 비트는 잎부터 줄기, 뿌리까지 하나도 버릴 게 없어 요리에 두루 활용하기 좋다. 잎이 나는 뿌리 위쪽 부분을 잘라 물에 담가 키워보자.
➌ 서양의 대파 격인 채소 릭은 요리해 먹는 것도 좋지만 자라서 꽃이 필 때까지 두어도 좋다. 그 모습이 정말 근사하다.

 

Contributing Editor 김희성, 유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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