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지속가능한 여행법

by Styler USA

팬데믹 이후 조금씩 자유로워진 여행의 권리를 더 오래 누리기 위해선 지속가능한 여행법을 익히는 게 필수다.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막히기 전까지 나는 여권 출입국 도장 수집가였다.
족히 20개국의 도장은 모은 듯하다. 매년 해외여행을 서너 번씩 떠났던, 그야말로 여행 중독자였다.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직전인 2019년 국제항공편 승객은 전 세계 기준 14억 명에 달했는데, 이는 세계관광기구가 예상한 시기보다 2년이나 빠른 수치다. 우리는 여행에 열광했고 5년 동안 항공산업의 탄소 배출량은 32%나 증가했다. 당시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비롯한 여러 도시가 과잉 관광객으로 인해 숙박 시설, 기념품 가게 등이 늘면서 임대료가 폭등해 현지인이 살기 어려워지는 문제를 겪기도 했다. 소담한 마을들은 북적이는 관광객으로 고유의 색을 잃고 디즈니랜드처럼 관광객에게 맞추어 획일화된 테마파크로 변하는 디즈니피케이션을 앓았다. 열병처럼 전 세계로 번진 과잉 관광을 멈춘 건 아이러니하게도 팬데믹이었고, 우리는 집과 마을에 머물며 지난 여행법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게 됐다. 지구와 마을을 해치지 않으며 여행하려면 숙고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 꽤나 많다. 장기화된 코로나19로 그간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폭발하는 ‘보복 여행’에 대한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위드 코로나 이후의 여행은 분명 이전과 달라야 한다.

1.오버투어리즘의 시대에 목적지 고르기
자연과 지구만큼이나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에, 당장 여행을 멈추라기보다는 어떻게 여행할지 고민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스웨덴의 룬드 대학교에서 2017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에서 호주로 왕복 여행을 하는 동안 약 4톤의 탄소가 배출된다고 한다. 일 년 동안 열심히 재활용,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해 아낄 수 있는 탄소량의 20배이자 세계자원연구소 WRI가 규정한 1인당 연간 탄소 허용치 2.5톤을 가볍게 뛰어넘는 수치다. 책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의 저자 홀리 터펜은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려면 모든 단계에서 탄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리스펀서블 트래블의 2020년 탄소발자국 연구 보고서는 음식, 이동 수단, 숙소를 선택할 때 기후 위기를 고려하면 휴가철 탄소 배출량을 지속가능한 수준의 하루 평균 배출량인 10kg CO2-e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수치는 현재 영국인 1인당 하루 평균 배출량인 20kg CO2-e의 절반 수준이다. 숨통이 트이는 소식이다”라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려면, 우선 우리가 오버투어리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인지하고 더 나은 여행법을 찾아야 한다. 그 시작은 여행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관광 명소보다는 숨은 여행지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아 자연환경, 쓰레기 문제가 위태로운 상태인 여행지는 지양하자. 매년 세계관광기구는 관광객이 가장 적은 나라 순위를 매기는데,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나 카리브해의 화산섬 몬세라트 등이 꼽힌다. 여러 기관의 발표 등을 참고해 여행지를 고르고,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며 천천히 여행하는 것이 탄소 줄이기에 효율적이다.

2.긴 여행 대신 마이크로 어드벤처
굳이 해외나 국내의 먼 여행지로 떠나는 여행보다 주말 동안 근교를 다녀오는 짧은 여행도 좋다. 일상 속에서 레저를 즐기는 ‘마이크로 어드벤처’의 개척자 앨라스터 험프리(Alastair Humphreys)는 “대륙을 횡단하거나 세계 일주를 하는 것만이 모험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집 마당에서 캠핑을 하거나 작은 텐트와 침낭만을 가지고 인근 언덕에 올라 시간을 보내는 것, 마을에서 러닝이나 사이클링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모험이 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이크로 어드벤처는 제가 이전에 사이클링하며 전 세계를 돌아다닌 것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더 짧고, 더 작고, 더 지역적인 수준에서요.” 그는 침낭 하나와 도시락을 들고 인근 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드라이브 중 차를 세우고 강에서 자유수영을 하는 식이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거나 불필요하게 많은 장비를 구입해 멀리 떠나는 큰 단위의 여행과 비교할 때 자칫 심심해 보이지만 느끼는 감정은 여느 여행과 비슷하다. 이번 주말엔 최소한의 채비를 갖춰 작은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3.숙소를 고르는 친환경적 기준

호캉스의 기념품이라고도 불리는 어메니티는 호텔을 결정하는 기준, 매력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일회용품인 만큼 환경에 해로움을 더한다는 사실은 지울 수 없다. 이 때문에 최근 많은 호텔이 다회용 어메니티로 교체를 선언했고, 씨마크 호텔의 경우 2년간의 개발을 통해 바이오 플라스틱 용기에 생분해 소재 필름을 사용한 친환경 어메니티를 배치했다. 글래드 호텔은 대나무 칫솔, 고체 치약으로 어메니티를 구성하고 아난티 호텔은 생분해성 케이스에 담긴 고체 샴푸, 컨디셔너, 보디워시를 제공한다. 호텔의 이러한 노력은 더욱 가속화될 예정이다. 환경부가 일회용 위생용품, 무상용품을 금지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내년부터는 객실 50개 이상의 숙박 시설에, 2024년엔 모든 숙박업계에 적용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법안의 규제 대상은 아니지만 호텔들은 선제적 조치로 무라벨 생수나 대나무 키카드 등을 도입하고 있다. 호텔업계의 반가운 변화인 만큼 여행객의 친환경 의식 역시 빠르게 성장할 필요가 있다. 숙소를 고르기에 앞서 호텔 홈페이지를 통해 친환경 서비스를 어디까지 제공하는지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도 좋겠다. 또한 새로 신축한 호텔보다 기존의 건물을 개조한 숙소가, 4성급 이상의 호텔보다는 작은 규모의 호텔을 고르는 것이 탄소 배출량 감소에 도움이 된다.

4.비행에 대한 부끄러움, 플라이트 셰임
유럽 내에서는 온실가스 배출이 가장 많은 비행기의 이용을 줄이자는 ‘플라이트 셰임’의 목소리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스웨덴에서 시작됐는데, 비행으로 인한 탄소 배출 등의 환경오염을 부끄러워하는 신조어 ‘플뤼그스캄(Flygskam)’이 등장하면서 2019년 한 해 동안 전 국민적으로 비행기 타지 않기 운동이 펼쳐졌다.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승객 한 사람이 1km를 이동하는 동안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비행기가 285g, 버스 68g, 기차 14g으로 비행기는 버스의 약 4배, 기차보다 20배 이상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는다. 전문가들은 비행기가 내뿜는 뜨거운 배기가스는 상공의 찬 공기와 혼합돼 수증기, 산화질소의 비행운까지 만들기 때문에 그 양을 함께 고려할 때 비행기의 가스 배출량은 적어도 두 배 이상일 것으로 예측한다. 곱절의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비행기 대신 고속열차, 기차나 버스 등을 타고 여행해보자. 창밖의 자연 풍경으로 인해 오히려 여행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면서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꼭 비행기를 타야 한다면 최대한 경유 횟수를 줄이고 낮시간대 비행 스케줄과 이코노미 좌석을 선택하자.

5.텀블러는 하나면 돼
이제 짐을 쌀 때 화장품과 옷, 신발 등과 함께 텀블러를 꼭 챙겨야 한다. 호주 퀸즐랜드는 지난 9월부터 식당, 카페, 마트 등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전면 금지했고 터키의 세페리히사르도 마찬가지다. 국내 지자체 역시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에 열심인데, 특히 제주는 텀블러 사용을 지향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있다. 우선 공항 1층에서는 보증금 1만원을 내면 텀블러를 빌려 여행 내내 사용할 수 있는 ‘푸른컵’ 서비스를 제공한다. 렌털 서비스 이용 시 도내 23개 곳의 카페에서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또한 텀블러를 가지고 가면 카페 100여 곳에서 무료로 식수를 받을 수 있는 캠페인 ‘지구별 약수터’도 있다. 한편 제주도 내 스타벅스 역시 대표 4개 매장 중심으로 리유저블 컵의 사용을 본격화했다. 음료 테이크아웃 시 리유저블 컵 보증금 1000원을 지불하고 공항, 매장에서 반납 시 되돌려받는 시스템이다.

6.먹고 마시는 순간에도 탄소 배출 체크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음식이다. 고급스러운 다이닝에서의 멋진 식사도 좋지만 여행지 전통시장에서 지역의 농부, 어부들에게 직접 농수산물을 구입해 요리하는 것도 탄소 배출 감소에 큰 도움이 된다. 식재료를 운송하면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 물론 주민들의 생계를 지원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고, 식당을 이용할 경우 구글맵스의 평가 등을 참고해 제철 식재료와 전통 요리법을 지향하는 곳을 찾아내는 것도 방법이다. 미슐랭 역시 2021년부터 각 도시의 그린스타를 선정했다. 윤리적·환경적 기준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지속가능한 레시피, 식재료를 사용해 탁월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들이니 참고해볼 것.

7.기념품 티셔츠는 멈춰!
누구나 한번쯤은 I ♥ NY이 적힌 티셔츠처럼 관광지에서 기념품 티셔츠를 사보았을 것이다. 관광지에서는 예뻐 보이기만 하던 옷이 집에 오면 잠옷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니, 잠옷은 차라리 꽤 괜찮은 처리법에 속한다. 대부분 옷장 한편에서 빛이 바래간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점은 항공·운수산업보다 패션산업에서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환경에 영향을 준다는 점. 매년 40억 벌의 청바지가 생산되는데,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물은 10,000L, 이산화탄소는 2.5kg가량이 필요하다. 일상 속에서 쇼핑을 줄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관광지에서 불필요한 기념 티셔츠를 사는 일은 더욱 숙고해야 한다. 대부분 여느 옷보다 저렴한 염료와 원단을 사용하므로 환경에 끼치는 위해가 더욱 크기 때문이다. 여행중 기념품 쇼핑 대신 벼룩시장을 이용하거나 현지 중고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물물교환을 해보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다. 영국의 헌옷 리사이클링 캠페인 #lovenotlandfill은 전문 여행 회사인 컨티키(Contiki)와 함께 아웃도어, 기념품 티셔츠 등 여행 의류를 교환할 수 있는 이벤트를 열었는데, 2019년 행사 한 번에 의류 1만7000점이 새 주인을 찾았다. 트레킹이나 플로깅처럼 레저 활동을 위해 아웃도어 옷이나 신발, 장비가 필요하다면 여행 출발 전 당근마켓이나 지역 커뮤니티를 이용하고, 친구들에게 옷을 빌리는 것도 방법이다.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물건을 여행 목적으로 소비하는 대신 빌리는 습관을 들여보자.

그간 우리는 과도하게 로컬의 고유한 정체성, 문화, 자연을 훼손하며 여행했다. 코로나19 이후의 여행은 달라져야 한다.

Contributing Editor 유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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